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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편지, <즐거운 편지>-황동규

by 마인드하트 2024. 6. 14.

편지,  <즐거운 편지>-황동규

 

황동규 <사는 기쁨>

 

황동규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오며 가며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빨간 우체통,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예전처럼 우체통에 편지 부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편지를 부칠 일이 생겨도 일반 우편보다는

등기 우편으로 부치게 되니

주로 우체국을 이용하게 된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서로의 안부를 주로 편지로 주고받던 시기도 있었는데

모두 까득한 옛날 일이 된 거 같아 살짝 서운하기도 하다.

우체부가 전해주는 편지를 기다리기도 하고

해마다 어느 시기가 되면

국군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행사를 하기도 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닌 우표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편지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일!

 

학교에 있는 시간,

수업 시간과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을 포함하여

학교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가끔 책상 안에 예쁘게 접힌 편지와

초콜릿이 들어있기도 했다.

그런 편지를 받게 되는 날이면

힘들었던 학교생활도 까마득히 잊고

며칠간은 마음이 들뜨곤 했다.

편지를 받는 순간,

누가 보냈을지, 무슨 내용을 썼을지 무척 궁금해지고

편지에 쓰인 내용을 읽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마음이 살짝 설레기도, 울적해지기도 했던 기억!

받은 편지를 고이 간직하며

몇 날 며칠을 읽어보고 또 읽어보기도 했던 거 같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 있었던 이야기,

친구간의 문제로 복잡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이야기들...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부모님이 슈퍼마켓을 한다고 했던 친구

밤에 부모님이 가게를 보시다가

졸고 있는 틈을 타 초콜릿을 몰래 꺼내왔단다.

그 초콜릿을 편지와 함께 내 책상 안에 슬쩍 넣어 놓았던 거다.

그렇게 편지를 받으면 다시 답장을 써주고

답장을 받은 친구는 답장에 또 답장을 써서 보내고

몇 번을 주고받은 편지 속에 가득 쌓인 마음 속 깊은 이야기,

그 느낌과 친구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그 이후 연락을 하고 지내는 관계가 형성되진 않았지만

그 순간이 기억나는 건

주고받은 몇 통의 편지에 대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펜팔(pen pal)

주로 편지를 통해 친분을 유지하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로

친분 관계를 맺는 사람들 간의 공간적인 거리가 클 때 펜팔을 한다.

오늘날에는 편지나 전화, 인터넷 매체 등 통신 수단을 사용해

사귀고 교류하는 친구를 포함한다.

 

출석 번호가 같다는 이유로

펜팔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 살던 친구로부터

뜻밖에 우연찮게 편지를 받게 되었다.

이름 가나다 순으로 부여된 출석 번호가 같아서

편지가 내게로 날아왔었고

그 내용은 펜팔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한 번으로도 끝날 수 있었던 관계였을 법도 한데

호기심으로 주고받기 시작한 편지는

꽤 긴 기간을 이어갔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1개월~3, 4개월에 한 번씩은 편지를 썼었고

3년 남짓 유지되었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 대하여

편지를 주고받으며 알게 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였을까?

변화된 학업 환경에 대한 적응기,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겪은 일상적인 이야기 등등

나름 꽤 솔직하고 진솔하게 적었었던 거 같다.

편지 쓰기가 멈출 즈음,

서로 합의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한 번쯤 대면하여 만나보는 게 어떨지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였었던 거 같다.

모아진 편지가 작은 상자 하나 가득쯤은 될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을 거 같아

버려지지 못하고 책장 한 켠에 자리를 내주었다.

지금 어디에선가 예전처럼

의연하게 생활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편지를 받는다면 즐거운 편지이길 기대한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까.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분의 여류 시인에게 시 설명을 들었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였다.

사랑을 사소함’으로 표현한 것에 대하여 한참을 강조하여 말씀하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황동규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이다.

1958년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하였다.

1968년 서울대학교 전임강사로 취임하여

2003년까지 영어영문학과 교사로 재직하였다.

할아버지 황찬영은 평양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3.1 운동 당시 태극기,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체옥되어 투옥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소나기>로 유명한 소설가 황순원이다.

딸 황시내도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어

3대에 걸친 문인 집안이다.

문필력도 대를 거쳐 대물림 된다니 놀랍지 않은가!

어떤 개인 날, 풍장,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삼남에 내리는 눈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