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머니, 어머니의 기도!
엄마, 어머니!
그 어떤 아름다운 언어를 가져오면
어머니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볼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무릎 꿇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머니는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
믿음, 소망, 사랑, 건강,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머리 숙여 눈물 흘리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구하셨을까?
그 때 어머니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지금의 나는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싶다.
믿음, 소망, 사랑, 건강,
어머니 여생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살아 온 일생을 회고할 때
잘 했다 생각하며 만족감을 느끼시길
때가 되면
그 분의 넓은 품에 편안히 안기시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 드린다.
사모곡(思母曲)
호ᄆᆡ도 ᄂᆞᆯ히언마ᄅᆞᄂᆞᆫ
낟ᄀᆞ티 들 리도 업스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마ᄅᆞᄂᆞᆫ
위 덩더둥셩
어마님ᄀᆞ티 괴시리 업세라.
아소 님하
어머님ᄀᆞ티 괴시리 업세라.
정철의 시조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엄마
정채봉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긋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사모곡>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 가요.
<시용향악보>‧<금합자보>에 사설 및 악보가,
<악장가사>에는 가사만 전한다.
<사모곡>은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었음을
기록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모곡>은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을
소박하게 그린 노래이다.
<사모곡>은 고려 속요가 지니고 있는
3음보 율격의 반복 어구와 댓구의 사용,
여음의 사용, 단연체의 시상을 연장체의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정철 (1536-1594)
자는 계함, 호는 송강‧칩암거사.
조선 중기의 시인, 문신, 정치인, 학자, 작가이다.
정치적 혼란기의 문신이었지만,
국문학사에서 그 이름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윤선도‧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1562년 문과에 급제했고
동인과 서인의 분쟁에서 서인의 편에 가담했다.
강직, 청렴한 성격이나
융통성이 적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도 해서
동인으로부터 간신이라는 평도 들었다.
정치가로 사는 동안 예술가로서의 재질을 발휘하였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성산별곡>, <훈민가> 등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가사와 한시, 단가를 남겼다.
시조 100여 수는 국문시가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가사 작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임진왜란 중 1593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강화에서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문집으로 <송강집> 7책과 <송강가사> 1책이 있다.
정채봉 (1946-2001)
동화작가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광양에서 성장하였다.
1975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동아일보> 동화 부문에
<꽃다발>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후 월간 <샘터>에서 편집부 기자와 주간‧편집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초등학교 교과서 집필위원 및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계간 <문학아카데미> 편집위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주요 작품으로는 <물에서 나온 새>, <오세암>, <스무살 어머니>,
<생각하는 동화>(전 7권) 등이 있다.
대한민국 성인동화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크게 평가받고 있다.
2001년 1월 간암으로 별세하였다.
그 후 2011년에 ‘정채봉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기형도(1960-1989)
시인이자 언론인.
살아있을 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발표된 시집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1979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다.
1983년 <식목제>로 <연세춘추>가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졸업 후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문화부‧편집부에서 근무하였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독창적‧개성 강한 시들을 발표하며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8),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1990>이 발간되었다.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1999),
전집 <기형도 전집>(1999)등이 발간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가난‧상실‧도시적 일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 실존의 부조리 등을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표지로 읽어내게 하는
새로운 경향을 형성했다는 평이다.
정일근(1958-)
1958년에 태어나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실천문학』에 <야학일기> 등 7편의 시를 발표하고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욕의 편지>라는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1991),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1994), <처용의 도시>(1995),
<경주 남산>(1998),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2001),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2003), <오른손잡이의 슬픔>(2005),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2006),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2009),
<방!>(2013), <소금 성자>(2015) 등이 있다.
경남대 교수를 역임하였고 「시힘」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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