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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이상의 <오감도>-물리학적 해석에 대한 기사

by 마인드하트 2024. 9. 25.

<오감도> 시제 4호 작품에 대한 물리학적 해석

- <오감도> 시제 4호는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의 네 번째 작품으로
1934년 7월 28일자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되었다.

&lt;오감도&gt; 시제 4호

 
엘리베이터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광고 전광판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상의 오감도에 대한 기사를 얼핏 보았던 것이다.
 
국내 연구팀이 물리학을 접목해
<오감도> 시제 4호에 대한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하였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에 눈길이 머물렀던 건
천재 작가로 불리는 이상의 난해한 시 <오감도>를
물리학적으로 접근해 새로운 해석을 찾았다는 점이었다.
 
<오감도>의 해석에 물리학을 접목한다는 사실도 신선하고
물리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오감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신기했다.
<오감도>의 의미를 물리학적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궁금한 마음에 기사 원문을 찾아보았다.
https://m.news.zum.com/articles/93365660?cm=share_copy
 
[출처] 난해한 시 ‘이상의 오감도’...물리학으로 비밀 풀었다.
YTN 임늘솔 기자의 기사 내용 인용
 

연구팀은 먼저,
숫자판을 원기둥으로 만들어 좌우가 뒤바뀐 숫자를 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어 원기둥을 도넛 형태로 말자
쉽게 규칙성을 찾기 힘들었던 수열이 자연스러운 형태로 읽혔습니다.
또, 수열을 연결하는 수많은 폐곡선들이
도넛 표면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즉 이상은 경계면의 정보만으로 내부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전자기학의 핵심 원리인 ‘스토크스 정리’를 이용해 시를 쓴 겁니다.
 
이전까지의 해석에서는
오감도 시제 4호 숫자판을 단순한 숫자의 배열로써 해석을 해왔지만
이번 해석을 통해 숫자판을 단순한 숫자 배열이 아닌
독자를 감쌀 수 있는 진찰의 도구로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연구팀은 도넛 내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표면을 지나는 무수히 많은 선은
MRI처럼 내부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해석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회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게
시인의 책무라는 것이 이상의 메시지인 겁니다.
 
이상이라는 시인이
특수상대성 이론과 같은 물리학 개념을
시에 적용하는 것을 즐겨 했거든요.
이상의 오감도를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싶어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상의 오감도가 발표된 지 올해로 90년.
이번 연구로 이상은
문학 작품으로 담기 어려웠던 식민지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물리학을 접목해 오감도를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 평면에 쓰인 시를 입체적으로 해석해
이상의 작품 연구에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오감도>를 해석하면
숫자 배열의 진찰 도구를 이용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철저히 진단하려 했던
작가 이상의 철학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 한 편도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고요하게
이상의 <오감도>를 감상해 보라!
내면에서 잠잠하게 어떤 느낌과 생각이 떠오를지
가만히 귀기울여보자.
 
 

이상

 
1910-1937
본명은 김해경.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모더니즘 대표 시인 겸 소설가.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한문 교사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한문을 접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서구 문예 사조의 영향을 받았다.
그곳에서 경험한 근대적 도시 풍경과 문명의 영향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다.
1930년대 초반에 <조선중앙일보>에 삽화를 그리며 문단에 발을 들였고,
이 후 문학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몸이 허약했던 이상은 결핵에 시달리다가 1937년 일본에서 사망하였다.
 
대표적 작품
시집 <오감도>, 소설 <날개>, 단편 소설<봉별기>, <지주회사> 등
 

이상의 <날개>

1936년에 발표.
한국 문학사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모더니즘 소설,
근대적 자아의 혼란과 도시 속 고립된 인간의 불안, 나약함을 드러낸 소설.
자전적 성격을 지닌 내면적 고백과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담고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심리적 방황을 깊이 있게 다룬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슬프다.”
“아아, 그렇지. 이제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구나.”
“나는 생각했다. 오늘도 일어나기 싫다. 그리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불현 듯이 겨드랑이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날자.날자.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오감도>(烏瞰圖)

이 상
 
시제일호(詩第一護)
 
13인(人)의아해(兒孩)(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適當)하오.]
 
제(第)일(一)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이(二)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삼(三)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사(四)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오(五)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육(六)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칠(七)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팔(八)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구(九)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십(十)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십일(十一)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십이(十二)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십삼(十三)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十三人)의아해(兒孩)는무서운아해(兒孩)와무서워하는아해(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中)에1인(一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二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二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1인(一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適當)하오.]
13인(十三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조선중앙일보』(1934.7.24.~8.8.)
 
 

<오감도>

 
1930년대 한국 문학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난해한 상징과 의미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많은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 시대를 반영한 독특한 감성과 시각이 담겨 있다.
 
<오감도>는 제1호부터 제15호까지 연재된 시로,
그 중 작품의 첫 부분 <오감도 제1의 A>가
가장 상징적인 시로 평가 받는다.
 
“13인의 아해(兒孩)”는 반복적으로 도로를 질주하며,
무언가 무서운 것에 쫓기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 시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표현은
불안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오감도>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심리적 불안과 고립감을 상징한다고 해석된다.
특히 제 1의 A에서 등장하는 ‘13인의 아해(兒孩)’는
현대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들은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만
목적지나 종착점이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현대인의 정신적 혼란과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해(兒孩)’라는 단어는 아이 또는 어린이를 뜻한다.
현대 사회에서 성숙하지 못한
불안정한 인간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무섭다’라는 단어도 시 속에서 반복된다.
무섭다는 감정은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한다.
13명의 아이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함께 달리고 있지만
각기 다른 두려움 속에 처해 있다.
이는 당시의 집단적 혼란과 개인적 고립을 동시에 표현한다.
 
<오감도>가 발표된
1930년대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특수성이 있는 시기이다.
질주, 막다른 골목, 아해, 무서움의 시어가 마음에 스며든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혼란과 압박, 경쟁, 두려움 등은 불가피하다.
<오감도>의 아해의 심정을
현대인들도 비슷한 무게로 느끼며 살아갈 때가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시에 대한 시대적, 문학적, 전문적 해석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시를 감상하는 독자 개인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시의 해석은 충분히 달라질 여지가 있을 것이다.
감상과 해석은 독자 개개인의 몫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
혜화동에 오감도라는 카페가 있었다.
그 곳의 분위기가 <오감도>와 닮아 있었을까?
눈을 감아 그 때의 기억을 아련히 되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