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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이육사, 문화공간 이육사

by 마인드하트 2024. 8. 10.

문화공간 이육사

문화공간 이육사

폭염이 한창인 8월의 오후,

문화공간 이육사를 방문하였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성북구 종암로 21가길 36-1에 위치해 있다.

문화공간은 총 4층 건물로

1층은 청포도 라운지,

2층은 광야 상설전시실,

3층은 교목 커뮤니티 공간기획전시실,

4층은 절정 사무실옥상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청포도 라운지에는

인포메이션, 넓은 테이블과 창가 주변에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이육사는 안동과 대구,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

1939년 가족과 함께 종암동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작은 테이블에는 육사시집이 꽂혀 있어

필사 가능한 공간을 제공했다.

시간을 내어

이육사의 시를 하염없이 베껴 써도 좋겠다.

인근 지역 주민이라면

하루에 한 번씩 들러

하루에 한 편씩 주옥같은 시들을 베껴 쓰며

긴 시간 동안 이육사의 모든 시들을

필사해 보는 목표를 가져 봐도 좋을 것이다.

이육사의 시(청포도, 교목, , 광야...)가 적힌 수십 가지의 예쁜 엽서와

다른 시인(김광섭, 한용운, 백석, 조지훈 등)의 시가 적힌 엽서,

이육사의 아름다운 시구가 새겨진 탐나는 책갈피는 선물로 제공된다!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에도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한 육사의 생애를

계절에 비유한 활자와 함께 들꽃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육사의 본명

 

이육사는 1904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출생하였다.

호적상 본명은 원록, 어릴 적 이름은 원삼이다.

1930조선일보을 이활이란 이름으로 게재했다.

중외일보,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할 때와

조선혁명 군사정치간부 학교에 입교할 때도

이활이라는 이름을 널리 썼다.

육사라는 이름은

19271018일 장진홍 의거에 연루되어 감옥에 있을 때

수인번호 64, 264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193010별건곤에 실린 대구사회단체개관

대구 이육사라는 필명이 적혀 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육사의 생애

 

이육사는 1919년 도산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0년 안일양과 결혼 후 맏형 이원기, 아우 이원일과 대구로 이사하였다.

1924년 일본 도쿄에 유학, 1926년 중국 베이징에 유학하였다.

1927년 장진홍 의거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1930년 대구청년동맹 간부라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32년 중국 펑티엔, 텐진, 베이징을 왕래하며

윤세주의 권유로

의열단장 김원봉이 설립 중인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하였다.

1939년 서울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하였다.

1941년 명륜동에서 딸 옥비가 출생하였고,

부친 이가호가 별세하여

서울 종암동 62번지에 빈소를 설치하였다.

1943년 신석초에게 답설을 제의하고

베이징행 계획을 밝혔다.

어머니와 맏형 소상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동대문 형사대와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동대문 경찰서에서 베이징으로 압송,

일본총영사관 지하감옥에 구금되었다.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116일 베이징에서 순국하였다.

이병희가 시신을 수습하여 125일 아우 이원창에게 넘겼다.

1945년 아우 이원조가 유고시를 발표하였다.

 

이육사의 작품

 

이육사는 독립운동 지사로서의 강한 의지를 시에 많이 담았지만,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고뇌를 시 속에 녹여 내기도 했다.

 

대표 시

로는 <황혼>, <청포도>, <절정>, <교목>, <광야>, <> 등이 있다.

그 외 광인의 태양, 강 건너 간 노래, 소년에게, 남한산성, 연보, 청란몽, 독백, 파초, 연륜, 계절의 표정, 바다의 마음, 호수, 연인기, 반묘, 서풍, 해조사, 횡액, 은하수, 신사기, 일식 등 다수의 시를 남겼다.

 

이육사의 시 감상

 

<황혼>

신조선1933.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할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을까

 

고비사막을 끊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인디언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정정이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청포도>

문장1939.8.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절정>

문장1939.8.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교목>

인문평론1940.7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광야>

자유신문1945.12.17.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자유신문1945.12.17.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발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움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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